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특허 소송 전쟁의 세계 – 제약사는 왜 서로를 고소할까? 본문
약을 만들기보다 소송이 먼저?
제약 산업은 흔히 ‘기술 기반 산업’이라고 불린다. 그런데 현실은 때때로 ‘소송 기반 산업’ 처럼 보이기도 한다. 왜 일까?
신약 하나가 가져다주는 시장 가치가 수조 원에 달하다 보니, 그 기술이 누구의 것인지, 어디까지 보호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싸움이 끊이지 않기 때이다. 특히 특허는 단순한 등록이 아니라, “누가 법적으로 지켜낼 수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영역이다.
⚖️ 특허 소송은 경쟁사의 발목을 잡는 가장 강력한 무기
특허 소송은 단순한 방어를 넘어서, 적극적인 공격 수단으로도 사용된다.
예를 들어 한 제약사가 고가의 신약을 개발했는데, 다른 제약사가 비슷한 구조의 약을 출시하려고 한다면?
기존 회사는 **특허 침해**를 주장하며 소송을 걸어, 경쟁사의 출시를 지연시키거나 막아버릴 수 있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시장 독점을 연장하거나, 거액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사례도 적지 않다.
📚 글로벌 제약사 소송 사례
💡 실제 사례 ①: 암젠 vs 사노피 – 특허 소송의 양날의 검
2010년대 초, 고지혈증 치료제 시장은 새로운 기술 하나로 큰 격변을 겪고 있었다. 바로 PCSK9 단백질을 타깃으로 한 항체 치료제 기술이다. 이 시장에 먼저 뛰어든 기업은 **암젠(Amgen)**과 스위스의 **사노피(Sanofi)**였다. 두 회사는 각각 *레파타(Repatha)*와 *프랄런트(Praluent)*라는 제품을 개발했고, 당연히 특허 전쟁도 함께 시작됐다.
암젠은 2011년에 이미 관련 항체에 대한 기초 특허를 등록했지만, 소송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2014년에 두 개의 추가 특허를 등록한 뒤, 즉시 사노피를 상대로 특허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는 바로 특허의 청구 방식에 있다.
‘속-타입( genus type )청구항’이란 무엇인가?
암젠은 2014년 특허에서 "PCSK9에 결합해 작용을 억제하는 모든 항체"를 포함하도록 특허를 청구했다. 이처럼 특정한 작용이나 기능만으로 큰 그룹 전체를 포함시키는 방식을 *속-타입 청구항(Genus type claim)*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모든 빨간색 자동차”를 특허청에 등록했다고 생각해보라.
그 안에는 페라리, 현대차, 심지어 장난감 차까지 포함될 수 있겠지?
→ 바로 이런 식으로, 암젠은 특정 기능을 가진 ‘항체의 모든 버전’을 자기 특허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 전략이 성공했다면, 경쟁사는 사실상 PCSK9 관련 치료제를 아예 개발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법원의 판결 – “그렇게까지 넓게 보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전략은 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
암젠은 26개의 항체 예시만 보여주었고, 나머지 수많은 항체는 직접 만들거나 검증하지 않았다. 또한 특허 문서에는 ‘이런 방식으로 항체를 만들 수 있다’는 일반적인 가이드라인만 있었고, 실제로 전체 그룹을 구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이렇게 판단했다:
“암젠이 말한 항체 그룹은 너무 넓고,
실제로 그런 항체를 다 만들 수 있다는 증거도 부족하며,
예시와 설명만으로는 전문가도 직접 실험 없이 구현할 수 없다.”
→ 즉, 특허는 유효하지 않다.
이 판결이 의미하는 것
암젠의 패소는 단순히 한 기업의 실패를 넘어, 바이오 특허의 흐름 자체를 바꾼 사건으로 평가된다. 특히 항체 기반 치료제처럼 복잡한 생물학적 발명에 대해
- 포괄적 권리를 주장하려면,
- 훨씬 더 많은 예시와 구체적 설명이 필요하다는 기준이 만들어진 것이다.
💡 실제 사례 ②: 삼성바이오에피스 vs 애브비 (AbbVie) – 바이오시밀러 전쟁
한국 기업도 이런 전쟁에 휘말린 적이 있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블록버스터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Humira, 성분명: 아달리무맙)의 바이오시밀러(복제약)를 개발하면서, 미국 시장 진입을 시도했다.
휴미라는 2021년 코로나19(COVID-19) 백신에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9년 동안 전 세계 매출 1위 의약품 자리를 지켜온 블록버스터 치료제다. 휴미라의 물질 특허는 2016년 만료됐는데, 이후 원개발사인 *애브비(AbbVie)*는 126건의 후속 특허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에버그리닝’(Evergreening) 전략으로 바이오시밀러의 시장 진입을 7년을 늦췄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에 특허 무효 소송을 제기하며 정면 대응했고, 이후 애브비와 라이센싱 계약을 체결하며 양사간의 특허 분쟁은 합이에 이르렀다. 이에 바이오시밀러 SB5 (성분명: 아달리무맙, 휴미라 바이오시밀러)를 유럽에서 판매 가능하게 됐다.
이 사건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리는 기업에게
"법적 장벽까지 고려해야 진짜 진출이다"
라는 교훈을 준다.
💡 실제 사례 ③: BMS vs 머크 – 면역항암제 특허 침해
BMS는 자사 항암제 옵디보(Opdivo)가 개발한 PD-1 면역 체크포인트 억제 기술이
머크의 키트루다(Keytruda)에 의해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양측은 2017년 22억 달러 규모의 합의에 도달했다.
머크는 옵디보 특허에 대해 일정 비율의 로열티를 지급하게 되었다.
교훈: 단일 특허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만들 수 있으며, 소송은 그 가치를 현금화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 소송에서 중요한 건 '특허 명세서의 디테일'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좋은 기술이면 이길 수 있다”
사실은 반대이다. 법정에서는 기술의 우수성보다는 특허 문서에 어떻게 작성되어 있는가,
즉 명세서의 범위와 표현 방식이 훨씬 중요하다.
‘A+B’로 구성된 약을 개발했는데, 특허 문서엔 ‘A 또는 B’라고만 적혀 있다면?
→ 경쟁사가 ‘A+C’ 약을 만들면 소송에서 이길 수 없다.
이 때문에 글로벌 기업들은 기술 개발 초기부터 소송까지 대비한 특허 문서 전략을 함께 설계한다.
마치며 – 특허 소송은 이기는 자가 아니라, 준비된 자의 것
특허는 ‘얼마나 잘 쓰느냐’가 모든 걸 바꾼다.
암젠의 사례는 특허가 단순히 등록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쓰고, 얼마나 구체적으로 입증했는가에 따라 시장 지배력과 소송 결과까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특허 소송은 비용도 많이 들고, 시간이 오래 걸리며, 기업 평판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수조 원의 시장이 걸린 전쟁터에서는, 소송 자체가 하나의 비즈니스 전략이 되는 것이다.
제약사들뿐만 아니라, 바이오 스타트업이나 테크 기업도 이제는 기술 뿐아니라
“이 기술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
를 먼저 고민해야 하는 시대이다.
기술 그 자체 만큼이나 명확하고 전략적인 특허 문서 작성이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다.
📌 다음 글 예고
“특허 없는 기술의 비극 – 특허 방어 실패 사례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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