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이탈리아 로마 여행 |돌과 빛이 겹겹이 쌓인 도시에서 본문
로마에 도착한 날, 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공기에 스며든 라벨 향과 뜨거운 흙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택시 창밖으로 흘러가는 전나무의 실루엣, 붉은 기와지붕, 어두운 돌담의 그림자까지
도시는 오래된 영화의 오프닝처럼 천천히 초점을 잡아갔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이곳의 길은 결국 시간을 향해, 혹은 시간을 거슬러 흐르고 있었다.
1) 콜로세움—시간의 균열에 서다
아침의 로마는 의외로 고요하다. 콜로세움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첫 빛을 받은 아치가 금빛으로 깜박였다.
거대한 타원형의 벽면은 수천 개의 긁힘과 균열로 가득했는데, 정작 그 상처들이 이 건물을 더 단단하게 보이게 했다.
나는 손바닥을 차가운 돌에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함성과 피, 모래 먼지와 쇠사슬 소리. 책에서만 읽었던 풍경이 균열 사이로 흘러나왔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지나 포로 로마노로 내려가면 계단이 잔잔하게 무너진 듯 이어진다.
바람이 불 때마다 로즈마리 향이 스미고, 기둥은 끊겨도 그림자는 온전히 남는다.
팔라티노 언덕 정상에서 내려다본 포럼의 바닥은 마치 껍질째 벗겨진 지구의 단면 같았다.
“도시란 결국 시간을 관리하는 법을 먼저 배운 자들이 만든다.” 마음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돌은 그저 돌이 아니었다.
축적된 선택과 후회의 기록이었고, 로마는 그 기록을 미화하지도, 감추지도 않았다.
2) 트레비 분수—소망은 물에서 더 오래 빛난다
정오 무렵, 분수 앞 광장은 이미 사람으로 파도쳤다. 가까스로 가장자리에 닿았을 때 물보라에 햇빛이 부서졌다.
조각상의 몸짓은 거칠고 생동감 있었다. 바다를 몰고 오는 네레이드의 다리 근육, 물에 젖어 무게를 얻은 옷자락의 주름, 그 모든 것이 내 손등의 솜털처럼 선명했다.
나는 동전을 꺼내어 등을 돌리고 어깨 너머로 던졌다. “다시 돌아오게 해달라.” 물결이 동전을 삼키는 소리는 짧았지만 묘하게 단단했다. 내 여행은 그 순간 비로소 현재형이 되었다. 떠날 때를 이미 예감하는 여행자는 현재를 더 섬세하게 만지게 된다. 분수를 돌아 나와 좁은 골목으로 스며들자 젤라테리아가 나를 붙잡았다. 피스타치오 한 스쿱, 솔티드 카라멜 한 스쿱. 벽에 기대어 한 입 베어무는 동안, 도시의 소음이 달게 녹았다.
3) 바티칸—침묵이 큰소리로 울리는 곳
다음 날 아침, 성 베드로 광장을 파도처럼 둘러싼 기둥 숲 앞에 섰다.
“여긴 인간이 지은 성전이라기보다 인간이 신에
게 제출한 숙제 같다.”
돔 안으로 들어서자 천장에서 떨어지는 빛이 안개처럼 번졌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앞에서는 뜻밖에도 슬픔보다 평온이 먼저 찾아왔다.
돌이 이렇게 부드러울 수 있다면, 인간의 고통도 어쩌면 형태를 바꿀 수 있겠다는 가능성 때문일까.
바티칸 박물관의 긴 복도를 통과하는 일은 작은 순례였다.
발바닥이 뜨거워질 즈음 도착한 시스티나 성당. 사람들은 대부분 고개를 들고 말이 없었다.
“침묵!”을 외치는 관리인의 목소리가 중간 중간 울려 퍼졌지만, 나는 그것이 오히려 더 깊은 집중을 만들어준다고 느꼈다.
손가락이 손가락을 향하는 창조의 장면 앞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방향으로 숨을 멈췄다.
4) 트라스테베레—밤의 로마가 사람을 품는 법
해 질 녘, 테베레강을 건너 트라스테베레로 들어서면 돌길의 표정이 달라진다.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처럼 군데군데 긁힌 골목은 노란 가로등 아래에서 더 따뜻해졌다.
작은 트라토리아의 문을 열자, 토마토소스가 끓는 냄비와 바질을 찢는 소리가 뒤섞여 “어서 와”라고 인사했다.
오징어먹물 파스타를 주문했고, 집에서 만든 하우스 와인을 한 잔 곁들였다.
와인의 빛깔은 유리컵 가장자리에 얇게 눌러앉아 작은 석양이 되었다.
식당 문을 나와 산타 마리아 광장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강아지를 산책시키고, 누군가는 기타를 치고, 누군가는 서로의 어깨에 기대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여행자도 시민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감각을 처음 배웠다. 소속감이란 때로는 서류가 아니라 온도의 문제였다.
5) 로마의 밤 산책—빛과 돌의 마지막 합주
마지막 밤, 폰테 시스투 다리 위에서 강바람을 맞았다.
물 위로 반짝이는 불빛이 떨릴 때마다, 도시의 심장박동이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았다.
캄포 데 피오리의 벼룩시장 잔향이 남은 공터를 지나 나보나 광장에 이르면, 베르니니의 강의 분수가 아직도 네 개의 대륙을 서로 소개하고 있었다.
“세상의 강이 만나면 그곳은 광장이 된다.” 로마는 그렇게 세계를 자기 안에 들여놓고, 오래된 방식으로 환대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 돌길의 울퉁불퉁한 리듬이 구두 밑창을 통해 전해졌다.
도시가 내 발바닥에 서명을 남기는 느낌. 나는 그 서명을 지우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더 천천히 옮겼다.
여행을 떠나며—로마가 가르쳐준 것
로마에서 배운 건 결국 견디는 법이었다. 돌이 시간을 견디듯, 사람도 시간을 견디며 더 단단해진다는 것.
트레비 분수에 던진 동전은 소망이자 약속이었다. 언젠가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그때도 이 도시는 여전히 빛과 돌의 합주를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다시, 그 연주에 잠시 앉아 귀를 기울일 것이다.
실전 여행 꿀팁 (바로 써먹는 가이드)
- 동선 묶기(발품 줄이기)
- 콜로세움–포로 로마노–팔라티노 언덕은 한 번에 이어서 보세요. 입구/출구 동선이 연결되어 있어 왕복을 줄일 수 있습니다.
- 트레비 분수–스페인 계단–판테온–나보나 광장은 도보 15~20분 간격의 황금 루트. 해 질 녘에 걷기 좋습니다.
- 시간 전략(사람 피하기)
- 인기 명소는 개장 직후 또는 폐장 1–2시간 전이 여유롭습니다. 트레비 분수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이 사진과 감상 모두 최고.
- 바티칸 박물관은 입장 시간대 예약을 권장합니다(운영정책 변동 가능). 시스티나 성당은 사진·동영상 금지와 정숙이 원칙이에요.
- 복장 & 에티켓
- 성당·성지 방문 시 노출이 큰 의상, 모자는 피하고, 어깨를 가릴 수 있는 얇은 스카프를 챙기면 유용합니다.
- 분수나 유적 위에 앉거나 올라타는 행위는 금지. 호객행위나 “장미·팔찌 던져주기” 상술은 정중히 거절하세요.
- 물 & 더위 대비
- 도시 전역의 나소네(Nasone) 공공 식수대에서 무료로 식수 보충 가능. 작은 텀블러를 휴대하세요.
- 여름철 강한 일사—챙 모자, 선크림, 가벼운 린넨 필수. 점심 후에는 그늘/실내 위주 동선이 체력 관리에 좋아요.
- 교통 팁
- 로마 중심은 도보 + 지하철 A/B선이면 대부분 커버됩니다. 구글맵/애플맵의 대중교통 길찾기를 병행하세요.
- 버스·메트로는 개찰·승차 시 검표에 신경 쓰기(무임승차 단속이 빈번). 택시는 공식 승차장에서 미터기 확인.
- 공항 이동은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떼르미니역) 또는 공식 공항버스/택시 고정요금제 활용(요금·정책은 변동 가능).
- 식당 주문 요령
- 메뉴에 Coperto(자리세) 또는 **Servizio(서비스 차지)**가 명시될 수 있어요. 계산서에서 확인하면 놀랄 일 없습니다.
- 물 주문: Acqua naturale(탄산 없음) / frizzante(탄산). 레스토랑은 보통 생수를 제공합니다.
- 젤라토는 산처럼 쌓아 올린 화려한 비주얼보다, 뚜껑 덮인 금속통(Pozzetti) 사용 가게가 대체로 우수한 편.
- 치안 & 소지품
- 관광지·대중교통에서 스리 주의: 가방은 몸앞 크로스, 포켓은 지퍼로 잠그기. “서명·기부” 접근, 발 밑 동전 떨어뜨리기 수법도 경계하세요.
- 여권은 호텔 금고에 보관, 실물 대신 사본/사진 휴대가 안전합니다.
- 사진 스팟
- 포로 로마노는 캄피돌리오(카피톨리노 언덕) 전망대에서 내려다볼 때 가장 장엄해요.
- 테베레강의 폰테 시스투는 노을 무렵 강물 위에 도시의 불빛이 켜지는 순간이 하이라이트.
- 한나절 추천 루트(걸음 수 대비 만족도 최고)
- 오전: 콜로세움(외부/내부) → 포로 로마노 → 팔라티노 언덕
- 점심: 포럼 근처 트라토리아(까르보나라/카치오 에 페페 추천)
- 오후~저녁: 판테온 → 나보나 광장 → 트레비 분수(해 질 녘) → 트라스테베레에서 저녁
※ 운영 시간/요금/입장 정책은 수시로 변동될 수 있어요. 방문 직전 공식 홈페이지나 최신 공지로 재확인하시길 권장합니다.
에필로그—돌길 위에 남긴 작은 서명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 구두 밑창에 남은 로마의 리듬이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아마 다음에 다시 올 때도 그 리듬은 같은 박자를 유지하고 있겠지. 도시가 바뀌어도 돌의 시간은 쉽게 흐트러지지 않으니까.
트레비 분수에 던진 동전이 아직 바닥 어딘가에서 빛나고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나를 다시 불러오기 위한 신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