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해외 여행 이야기 (3)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

피렌체에 도착한 날, 하늘은 맑았고 공기에는 대리석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기차역을 나서자 붉은 지붕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두오모의 거대한 돔이 솟아 있었다.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정교하게 구성된 풍경이었다.피렌체는 ‘보는 도시’가 아니라 ‘느끼는 도시’였다. 걷는 한 걸음마다 르네상스의 숨결이 묻어 있었다. 두오모—하늘을 향한 인간의 꿈피렌체의 중심,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거대한 붉은 돔은 도시 어디서나 보였다. 브루넬레스키가 남긴 건축의 정수는 그 자체로 인간의 가능성을 상징했다.계단을 따라 돔 위로 오르는 길은 끝이 없을 만큼 길었지만, 꼭대기에 도착해 도시를 내려다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붉은 지붕 바다 위로 알록달록한 창문과 종탑이 어우러져 있었다. 피렌체의 하늘..
이탈리아 남부는 단순히 지도 위의 공간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이 만든 감각의 풍경이었다.로마에서 내려와 만난 나폴리, 폼페이의 돌길을 걸었고, 아말피의 절벽에서 바다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포지타노가 있었다.이탈리아 남부의 길은 늘 햇살로 시작해 바다로 끝난다.절벽 위의 마을,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색채의 도시. 나는 그곳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도시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호흡으로 나를 맞았다. 남부에서 보낸 며칠은 “천천히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1) 나폴리—혼돈 속의 리듬나폴리에 첫발을 디디자마자, 사람과 소리와 냄새가 폭발하듯 쏟아졌다.좁은 골목길을 메운 스쿠터, 하늘을 가리는 빨래줄, 시장을 가득 채운 상인들의 목소리.처음엔 복잡하고 산만했지만, 곧 이 도시의 리듬이 있다는 ..

로마에 도착한 날, 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공기에 스며든 라벨 향과 뜨거운 흙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택시 창밖으로 흘러가는 전나무의 실루엣, 붉은 기와지붕, 어두운 돌담의 그림자까지도시는 오래된 영화의 오프닝처럼 천천히 초점을 잡아갔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이곳의 길은 결국 시간을 향해, 혹은 시간을 거슬러 흐르고 있었다. 1) 콜로세움—시간의 균열에 서다아침의 로마는 의외로 고요하다. 콜로세움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첫 빛을 받은 아치가 금빛으로 깜박였다.거대한 타원형의 벽면은 수천 개의 긁힘과 균열로 가득했는데, 정작 그 상처들이 이 건물을 더 단단하게 보이게 했다.나는 손바닥을 차가운 돌에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함성과 피, 모래 먼지와 쇠사슬 소리. 책에서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