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48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피렌체, 시간의 색으로 물든 도시 피렌체에 도착한 날, 하늘은 맑았고 공기에는 대리석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기차역을 나서자 붉은 지붕이 끝없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두오모의 거대한 돔이 솟아 있었다.마치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정교하게 구성된 풍경이었다.피렌체는 ‘보는 도시’가 아니라 ‘느끼는 도시’였다. 걷는 한 걸음마다 르네상스의 숨결이 묻어 있었다. 두오모—하늘을 향한 인간의 꿈피렌체의 중심,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거대한 붉은 돔은 도시 어디서나 보였다. 브루넬레스키가 남긴 건축의 정수는 그 자체로 인간의 가능성을 상징했다.계단을 따라 돔 위로 오르는 길은 끝이 없을 만큼 길었지만, 꼭대기에 도착해 도시를 내려다보는 순간, 숨이 멎었다.붉은 지붕 바다 위로 알록달록한 창문과 종탑이 어우러져 있었다. 피렌체의 하늘.. 2025. 10. 20. 실험 실전 시리즈 3편: Western blot의 본질 – 밴드보다 샘플링이 중요하다 1. 밴드는 결과가 아니라 ‘기록’이다Western blot을 처음 배울 때, 대부분의 연구자는 “밴드가 잘 나왔는가”에 집중한다.그러나 숙련된 연구자는 밴드보다 샘플의 상태를 먼저 본다.Western blot은 단백질 발현을 보는 실험이 아니라,세포나 조직이 어떤 상태였는지를 기록하는 기술이다.즉, 밴드는 ‘결과’가 아니라 ‘세포의 생리학적 기록’이다.그 기록을 얼마나 정확히 보존하느냐가 Western blot의 핵심이다.2. Lysis buffer는 “해부도구”다세포를 lysis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문장이 있다.“RIPA buffer로 단백질을 추출한다.”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어떤 buffer를 쓰느냐보다, 어떤 단백질을 보고 싶은가다. Buffer 종류 특징 추천 용도 RIPA강력한 .. 2025. 10. 10. 이탈리아 남부 여행 에세이|햇살과 바다가 만든 길 위에서 이탈리아 남부는 단순히 지도 위의 공간이 아니라, 햇살과 바람이 만든 감각의 풍경이었다.로마에서 내려와 만난 나폴리, 폼페이의 돌길을 걸었고, 아말피의 절벽에서 바다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 끝에는 포지타노가 있었다.이탈리아 남부의 길은 늘 햇살로 시작해 바다로 끝난다.절벽 위의 마을, 바다를 향해 기울어진 색채의 도시. 나는 그곳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도시는 역사가 아니라 현재의 호흡으로 나를 맞았다. 남부에서 보낸 며칠은 “천천히 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1) 나폴리—혼돈 속의 리듬나폴리에 첫발을 디디자마자, 사람과 소리와 냄새가 폭발하듯 쏟아졌다.좁은 골목길을 메운 스쿠터, 하늘을 가리는 빨래줄, 시장을 가득 채운 상인들의 목소리.처음엔 복잡하고 산만했지만, 곧 이 도시의 리듬이 있다는 .. 2025. 10. 10. 실험 실전 시리즈 2편: Transfection, 단순한 전달이 아니다 Transfection은 ‘전달’이 아니라 ‘협상’이다많은 연구자들이 Transfection을 “세포에 DNA나 RNA를 넣는 과정”으로 단순하게 정의한다.하지만 실제로 이 과정은 세포와 외부 물질 간의 협상(negotiation)이다.세포는 외부로부터 오는 분자를 본능적으로 “침입자”로 인식한다.따라서 Transfection은 세포의 방어 기전을 피해 ‘받아들일 만한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는 기술’이다.즉, 핵심은 reagent의 효율보다 세포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는가다.효율 높은 reagent보다 중요한 건, 세포의 상태(대사, 성장 단계, 스트레스 레벨)다. Reagent, Viral — “전달”의 두 가지 언어세포내에 DNA나 RNA를 전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방법 원리 특징 예시 .. 2025. 10. 7. 실험 실전 시리즈 1편: 세포 배양의 모든 것 – 세포 컨디션이 결과를 만든다 세포 배양은 ‘살아 있는 생명체 관리’다세포 배양(cell culture)은 단순히 “배양기 안에 세포를 키우는 과정”이 아니다.그건 하나의 생명체를 환경에 맞게 조절하는 섬세한 생태학적 실험이다.세포는 항상 같은 유전자를 지녔지만,그 표현형은 우리가 제공하는 "환경(온도, pH, serum, CO₂, passage)"에 따라 달라진다.즉, 같은 세포주라도 다른 연구자의 손에서 전혀 다른 세포가 된다.세포 배양의 핵심은 therefore 단순한 “증식”이 아니라‘실험에 적합한 상태의 세포’를 준비하는 과정이다.Passage number는 세포의 ‘나이’다많은 초보 연구자들이 passage number를 단순히 “숫자”로만 본다.하지만 이는 세포의 생물학적 나이를 나타내는 지표다.예를 들어, HEK293이.. 2025. 10. 6. 실험의 본질 – 데이터가 아닌 ‘이해’를 얻는 과정 ‘성공한 실험’이란 무엇인가박사 학위를 받고, 연구를 계속하면서 나는 종종 “오늘 실험 성공했어요”라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대부분의 실험은 우리가 기대한 그래프 모양이 나왔는가, 밴드가 떴는가, p-value가 유의한가로 평가된다.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성공일까?진정한 의미의 ‘성공’은 실험 결과를 통해 메커니즘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는가에 있다.즉, 결과가 예상과 달라도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성공한 실험’이다.데이터는 그저 결과물일 뿐, 과학자는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탐구하는 사람이다.나를 소개할 때, technician, researcher 보다 scientist라고 자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실험은 ‘관찰’이 아니라 ‘질문’이다실험의 출발점은 ‘이 현상을 어떻게 재.. 2025. 10. 5. 신약 개발의 마지막 질문: 사회적 가치와 윤리적 고려는 충분한가? 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에 몸담고 있는 N년차 박사가 들려주는 신약 개발 이야기 29.1. 신약은 생명을 구한다… 그러나 누구의 생명인가?신약은 단순한 치료 수단을 넘어 인류의 생존과 삶의 질에 직결된 혁신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그 약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전 세계적으로 출시된 신약 중 상당수가 고소득 국가의 만성질환, 희귀질환, 항암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이는 시장성 중심의 투자 구조 때문이다.개발비 회수를 위해 가격은 수천만 원, 심지어 수억 원을 넘는 경우도 많다.결국 저소득국가, 또는 건강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은 이 혁신의 혜택에서 배제되곤 한다.2. 희귀질환·소아질환은 소외되는가?신약은 시장이 아닌 사람을 위한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희귀하거나 경제성이 낮은 질환에 .. 2025. 10. 5. 이탈리아 로마 여행 |돌과 빛이 겹겹이 쌓인 도시에서 로마에 도착한 날, 공항 문이 열리자마자 공기에 스며든 라벨 향과 뜨거운 흙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택시 창밖으로 흘러가는 전나무의 실루엣, 붉은 기와지붕, 어두운 돌담의 그림자까지도시는 오래된 영화의 오프닝처럼 천천히 초점을 잡아갔다.“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이곳의 길은 결국 시간을 향해, 혹은 시간을 거슬러 흐르고 있었다. 1) 콜로세움—시간의 균열에 서다아침의 로마는 의외로 고요하다. 콜로세움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자 첫 빛을 받은 아치가 금빛으로 깜박였다.거대한 타원형의 벽면은 수천 개의 긁힘과 균열로 가득했는데, 정작 그 상처들이 이 건물을 더 단단하게 보이게 했다.나는 손바닥을 차가운 돌에 대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함성과 피, 모래 먼지와 쇠사슬 소리. 책에서만 .. 2025. 9. 29. 신약 개발의 미래: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의 융합 – 효율성과 성공률을 동시에 높이는 차세대 전략 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에 몸담고 있는 N년차 박사가 들려주는 신약 개발 이야기 28. 1. 왜 디지털 전환이 필요한가?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평균 10~15년, 수천억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고위험-고비용 산업이다.특히 임상 실패율이 90% 이상에 달할 만큼 불확실성이 크다.이러한 상황에서 AI, 빅데이터, 디지털 트윈, 클라우드 등의 기술이시간 단축, 비용 절감, 성공률 제고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며제약·바이오 산업의 필수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다.2. AI가 바꾸는 신약개발의 각 단계🔬 타겟 발굴 (Target Identification)수십억 개의 유전체 및 전사체 데이터를 분석하여 질병 원인 유전자 또는 약물 표적 단백질을 예측*예시: 베릴AI(B.. 2025. 9. 15. 미래의 신약: 유전자 치료와 mRNA – 치료 패러다임을 바꾸는 차세대 기술 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에 몸담고 있는 N년차 박사가 들려주는 신약 개발 이야기 27. 1. 패러다임의 변화: 치료에서 ‘치유’로전통적인 신약 개발은 화학 합성 의약품 중심이었고, 증상 완화에 초점을 맞췄다.그러나 유전자 치료와 mRNA 기반 치료제의 등장으로질병 원인을 직접 교정하거나 예방하는 접근이 가능해졌다.특히 희귀질환, 암, 감염병 등 기존 치료가 어려웠던 영역에서이 두 기술은 신약 시장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르고 있다.2. 유전자 치료(Gene Therapy)의 혁신유전자 치료는 손상되거나 결함이 있는 유전자를 교정, 대체, 무력화해질병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전략이다.최근에는 AAV, LNP 같은 전달체 기술의 발전으로안전성과 효율성이 크게 개선되었다.▷ 주.. 2025. 8. 24. 실제 사례로 보는 신약 개발 이야기 – 성공과 실패에서 배우는 제약·바이오 전략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에 몸담고 있는 N년차 박사가 들려주는 신약 개발 이야기 26. 1. 신약 개발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산업신약 개발은 평균 10~15년의 기간과 약 2조 원 이상의 비용이 소요되는 초고위험 산업이다.하지만 한 번 성공하면 블록버스터급 매출을 올릴 수 있어,글로벌 제약사들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있다.실제 역사 속 신약 개발 사례들을 보면,기술력·규제 전략·시장 분석 세 요소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성공 사례 ① 글리벡(Glivec) – 암 치료 패러다임을 바꾼 약개발사: 노바티스(Novartis)적응증: 만성골수성백혈병(CML)승인연도: 2001년성과: 연 매출 50억 달러 이상글리벡은 세계 최초의 표적항암제로, 특정 유전자 변이를 .. 2025. 8. 24. 신약 개발의 윤리와 사회적 책임 – 생명을 다루는 기술, 어떻게 더 공정할 수 있을까? 바이오 신약 개발 회사에 몸담고 있는 N년차 박사가 들려주는 신약 개발 이야기 25. 신약 개발은 단지 과학일까?신약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약이기도 하고,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손에 넣지 못할 ‘고가의 희망’이기도 하다.개발에는 수천억 원이 들고, 성공률은 낮지만,성공한 약 하나는 수십 조 원의 매출을 낼 수 있다.이런 구조 속에서 제약회사는 항상 “이익과 윤리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그래서 신약 개발은 기술이자 사업이고, 동시에 사회적 행위다.1. 임상시험의 윤리성임상시험은 신약이 사람에게 안전하고 효과적인지 검증하는 핵심 절차다.하지만, 실험 대상은 환자이며 인간이다.주요 이슈:정보에 기반한 동의(Informed Consent): 환자가 충.. 2025. 8. 24. 이전 1 2 3 4 다음